조각보에서 만난 당사자들의 인터뷰입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트랜스젠더와 주변인의 삶의 모습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름을 클릭하면 연재 중인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 명의 인터뷰는 5~10차례에 걸쳐 연재됩니다.

각 인터뷰는 참여자의 신상보호를 위해
이름, 장소, 직업을 비롯한 여러 요소를 내용이 왜곡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을 읽고 여러분의 이야기도 함께 댓글로 남겨주세요.

게제된 글을 무단으로 전제/ 도용할 시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이요6. 처음에는요, 제가 미친 놈인 줄 알았어요


수진 : 이야기가 한 바퀴 돈 것 같네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뭔가 난 좀 사람들하고 다르다고 생각하셨어요?

이요 : 처음에는요, 제가 미친놈인 줄 알았어요.

수진 : 처음 느낀 건 언제고, 어떤 일을 통해서 그렇게 느끼셨어요?

이요 : 초등학교 2학년? 3학년? 그전에도 느꼈을지도 몰라요. 어릴 때라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여자 남자 따로 뭔가를 했어요. 율동 같은 거요. 그런데 그때 처음 느낀 것 같아요. “나도 저걸 하고 싶은데, 난 왜 이걸 해야 하지?” 기억나는 건 그거예요. 그때가 상징적인 사건이었어요. 그 후에는 사실 저 자신을 되게 억눌렀어요. 저는 티 안내려고 더 노력했고요. 왜냐하면 상상을 못했으니까, 내가 미친놈이라고 밖에 생각이 안 들었어요. 집이 워낙 가부장적이기도 했고요. 제가 좀 어리버리해서 실수로 학교도 한 번 못 간 적 있었거든요. 그땐 오전 반과 오후 반이 나뉘어 있었던 때인데, 제가 오전 반인데 오후 반을 간 거예요. 그럼 결석이잖아요.

수진 : 다들 그런 경험 있지 않아요? 저도 그런 경험 있는데요?

이요 : 그것 때문에 아빠한테 엄청 혼난 거예요. 막 따귀 맞고요. 집안 자체가  되게 엄했어요. 학교까지 찾아가서 결석 지워달라고 하며 난리가 났죠. 한 번 빠진 것 가지고... 그래서 부모님에게 반항한다는 거 자체가 저한테는 되게 어려웠어요. 한 번은 제 오빠가 염색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날 오빠는 대머리될 뻔 했어요. 염색 한 번 했다가… [웃음] 그 후로 우리 가족은, 저도 그렇고 오빠도 그렇고 염색이라는 걸 한 번도 안 했어요. 그러니까 딱 FM대로만 살아야 되는 집안이에요. 조금만 벗어나면 당장 뭐라고 그러시니까... 어떻게 보면 제가 수술을 하게 된 것도 집안과 관련이 있어요. 그전에는 마음은 있었지만 못 하고 있었는데... 아빠가 쓰러져서...

수진 : 어떻게 보면 “때는 이때다!”라는 생각이 드신 거네요?

이요 : 더 이상 날 말릴 사람이 없다는 해방감이 있긴 했어요. 그 영향이 결정하는 데에... 무시 못할 것이었던 거 같아요.

수진 : 혹시 중고등학교를 남학교를 다니셨나요?

이요 : 네. 그때는 남녀공학은 있어도 합반은 없었죠. 중학교는 남녀공학이었는데 합반은 아니었고요. 고등학교는 남자 학교였어요.

수진 : 그런 거 심리적으로 부대낌이 있지 않아요?

이요 : 증명서 같은 거로요?

수진 : 그게 아니라 남성 사회에 섞여있을 때의 이질적인 느낌이요.

이요 : 저는 특별하게 이질적인 건 없었어요. 그냥 어... 힘들긴 했어요. 이질적인 거라면... 운동 같은 거 되게 싫어했죠. 남성적인 거나 거친 거, 이런 걸 되게 싫어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랑 어울리려면 그런 걸 해야 되니까요. 저는 태어나서 말뚝박기도 한 번 해본 적 없거든요. 험한 운동은 아예 안 했어요.

수진 : 그래도 애들이 하자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잖아요?

이요 : 안 했어요. 그런데 제 친구들도 굳이... 제가 그때는 지금보다 더 말랐었어요. 옛날 사진 보면 완전 뼈다귀가 따로 없었거든요. 친구들도 굳이 오라고 하진 않았고요. 보호 받는다는 느낌이 컸어요. 친구들 사이에서도 뭔가 좀 보호를 받으면서... 그렇게 지냈던 것 같아요. 학창 생활이 크게 어렵다거나 뭐 그런 건 없었고요.

수진 : 청소년기에 2차 성징이 오잖아요. 그때 느낌은 어땠는지 설명해줄 수 있어요?

이요 : 싫죠. 일단 난 여성적이고 싶은데 내 의지랑 상관 없이 (몸이) 변하니까요. 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요. 몰랐으니까... 이런 삶이 있다는 자체도 몰랐던 때였고요. 신나거나 그런 기분은 아니었어요. 그냥 싫었어요.

수진 : 지금 얼굴 수염은 제모를 하신 거예요?

이요 : 네. 그런데 해도 (수염) 나요. 계속해서 또 해야 해요. 계속 해야 하죠. 지겨워~

수진 : 한 10번 정도 하면 안 나게 되어요. 저도 거의 없어요. 제가 얼굴은 한 20번 정도 했을 거예요. 요만큼 나는 것도 싫어서요. 그렇군요. 이제 인터뷰할 질문은 거의 다 여쭤본 것 같은데요. 이요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지난 삶을 굉장히 평탄하게 지내오셨다는 느낌이었거든요. 혹시 굴곡이 있다면 어떤 게 있었을까요? 예를 들어 아웃팅을 당하신 적 있다거나요?

이요 : 그렇게 노골적으로 괴롭혔던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 한 번 있는데... 아웃팅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나가다가 “어? 쟤? 남자야, 여자야?” 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이건 아웃팅은 아닌가요? 그러면 아웃팅 당한 경험은 없었어요.

수진 : 워낙에 잘 숨기셔서 그런가 봐요. 그 이전의 인맥도 싹 끊으신 거잖아요.

이요 : 그렇죠. 그 이전의 관계는 다 끊고 살았고, 결심한 다음에는 아웃팅 당하기 전에 먼저 커밍아웃을 했으니까요. [웃음] 그런데 요즘은 아빠가 저를 보시고선 엄마한테 “쟤가 여자야?” 그러신대요. 엄마가 큰일났다고 그러세요. 아빠가 “너 여자 같다”고 그런다면서...

수진 : 저도 집에 가면, “삼촌이야, 고모야?” 그러면서 조카들이 숨어요.

이요 : 네, 애들한테가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 저도 조카가 하나 있는데, 얘들한테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요. 걔도 되게 혼란스러울 것 같아요. 삼촌인데 이모가 된 거니까요. [웃음] 저는 친척들한테도 이야기 못 했어요. 그러니까 친척들한테 얘기해도 나는 사실 상관 없는데, 엄마가 힘들어하더라고요. 원래는 엄마한테 얘길 했을 때에도 힘들어하셔서 제가 집을 나왔거든요. 나와서 사는 이유가 뭐냐면, 숨기고 살아야 되니까 집을 나왔던 건데요. 나중에 “아빠 쓰러지고 그랬으니까 나도 같이 들어가 살까?”라고 엄마한테 이야기 했는데... 원래는 엄마가 되게 잘 받아줬어요. 첫날에는 “너 이삿짐 뭐 뭐 있냐?” 그러면서 “이거 이거 옮기고 이렇게 배치하자”라면서 되게 구체적으로 합칠 거 막 이야기하다... 그 다음날 갑자기 엄마가 전화를 하더니, 안될 것 같다는 거예요. 엄마가 말씀하시길, “생각해보니까 엄마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주변 사람들한테 못 하겠다”고... 그냥 못하겠다고 그러시면서 그냥 가끔 오는 걸로 하자고... 그날 엄청 울었죠. 난 엄마랑 같이 살고 싶은데, 엄마가 힘들 것 같다고 하니까...

수진 : 나가서 사는 거 좋은데...  [웃음]

이요 : 혼자 사는 건 외로우니까요.

수진 : 네. 그러면 이제 슬슬 마지막 질문, 후배들을 [웃음] 위해 한 마디 해주신다면?

이요 : 후배들을 위해서요? 음... 요새 젊은 사람들은 좋은 기회도 있고, 세상이 되게 많이 변했기 때문에... 제가 그 나이 때에는 상상도 못했거든요. 지금 젊은 친구들의 경우에는 조금만 노력하면 진짜 여성스럽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좋은 세상이니까 열심히 살고, 좀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어요. 애들, 젊은 친구들을 제가 봤을 때는요. 뭐라 해야 되지? 치열하지 않은 것 같아요. 치열하게 살았으며 좋겠고요. 제일 중요한 게, 수술만 목표로 하고 사는데 그런 게 아니라 수술하고 나서 어떻게 살아야 될지 생각을 하는 것도 중요해요. 집에서 도와주지 않는 이상 사실 수술하고 나서의 삶은 자기가 책임져야 되는 거니까요. 그런데 젊은 친구들을 만나보면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안 하더라고요. 수술만 생각하는 거예요. 돈 모아서 수술하는 게 전부... 그런데 그러다 보니까 이 일 저 일 다 하는 거죠. 근데 저는 그게 좀... 포기할 건 포기하고 체계적으로 자기가 계획을 짜는 쪽이 어떨지... 그러니까 그 친구들은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하고선  여학생으로서 즉, 여자로서 대학교부터 시작하고 싶다는 그런 친구들도 많더라고요. 그런데 포기할 건 포기하고 돈을 모으되, 나중에 수술하고 나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배우면 좋을 것 같아요. 전문적인 기술 배운다든지요. 시간이 아깝잖아요. 1년이란 시간을 공장 일하면서 버리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들을 보면 이해는 가는데, 아쉬워요. 좀 멀리 보고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고 난 후 2년 후에 대학교 가도 상관 없잖아요, 그죠? 나는 30대 중반 나이인데 지금 새로이 진학을 하려 하거든요. 저는 수능 보려고 올해부터 막 준비했어요. 모의고사 보고 자료 찾고… 하여튼 젊은 친구들이 수술 이후의 삶을 좁게 보더라고요. 그런데 좀 느긋하게 생각을 해서 체계적으로 하면 낭비하는 시간도 줄겠죠. [웃음]

수진 : 네에~ 그럼 긴 인터뷰 동안 많은 이야기 해주시느라 정말 수고하셨어요.

이요 : 얘기를 잘 한 건지 모르겠네요. 수진님도 수고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