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트랜스젠더 화장실 사용권의 의미 : 미국 내 법제화 논쟁을 중심으로

- 글로벌하게 핫한 이슈, 화장실

요즘 화장실 이슈가 뜨겁다. 심지어 주류 언론의 지면과 포털 사이트의 메인 뉴스 창에서 '트랜스젠더, 화장실'이라는 키워드가 당당하게(?) 올라오곤 하는 최근의 모습을 마주하고 있자니, 싱숭생숭 멜랑꼴리하기까지 한 기분이 들 정도다.


사실,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이용에 대한 권리 논쟁은 국내에서도 아주 낯선 이슈가 아니다. 트랜스한 일상을 사는 사람은 누구나 공공장소에서 화장실을 편히 쓸 수 있을지를 걱정/고민하는 일화를 수 십 개는 갖고 있으니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이슈이다. 그리고 한국 내 인권활동 역사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2000년대 중반 당시의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공공장소와 공개행사 등에 성별-중립적 화장실을 설치할 것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있었으며, 공동 숙박시설과 탈의 공간 등에서 개개인의 젠더 정체성을 존중하면서도 트랜스/시스 간 공존이 어떻게 평화롭게 가능할지에 대한 논의 또한 드문드문 있어왔다. 다만, 대()사회적인 운동으로 확산되지 못한 채이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여전히 트랜스젠더 및 성별이분법적으로 자신을 정체화하지 않는 이들의 개개인의 노력과 희생과 꼼수와 불이익 감수를 바탕으로 화장실 논의가 수면 위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글의 첫 머리에서 언급한 '화장실 이슈가 뜨겁다'는 말은, 트랜스젠더 이슈와 관련하여서는 현재까지는 구미 지역에서의 이야기이다. 특히 그 중심에 있는 국가는 미국이다. (더불어, 영국, 아이슬랜드, 이탈리아, 캐나다, 멕시코 등에서도 학교 및 공공기관에서 트랜스젠더 화장실 이용권에 대한 논의가 생겨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에서는 트랜스젠더 화장실 이용권을 둘러싸고 서로 정면 배치되는 법안들이 각 주마다 중구난방으로 발의/통과되었다가 폐지되었다가를 반복하고 있으며, 이 과정을 둘러싸고 찬반의 입장 - 특히 종교적 입장, 보수적 여성주의의 입장 등이 교차하면서 - 이 매우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상업적 유통 기업과 글로벌한 IT 기업들, 유명 가수와 연기자 등 연예계, NBA와 메이저리그 등 프로 스포츠 산업까지... 현재 트랜스젠더 화장실 이용 이슈는 전방위적 문화 현상이 된 상태이다. (ps. 조금 흥미로운 지점은, 미국 내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및 성별 분리된 공간에 대한 논쟁의 역사가 1980년대까지 거슬러올라갈 수 있음에도, 최근 2~3년 사이에 관련 논쟁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는 현상이다. 앞차가 지나갔으니 뒷차가 오는 격이랄까?)


이 글에서는 먼저 최근 2~3년 사이 미국 내에서 폭증하다시피한 트랜스젠더 화장실 이슈 관련 법제화 사건들과 쟁점화되었던 법제화 시도와 변화, 그에 따른 논쟁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그리고 현재의 찬반 논쟁 구도를 살펴봄으로써 복잡복잡한 논쟁이 대체 어떤 맥락인지를 살짝이나마 엿보고자 한다.


- 전미 트랜스젠더 화장실 사용권 찬반 대결의 양상

최근 2~3년 사이 미국에서는 "트랜스젠더가 화장실/탈의실/기숙사 등 성별 분리된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느냐, 어떻게 사용하게 해야 하느냐?"를 어찌 규정할 것인지를 두고 지역 단위 혹은 주 정부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연방 정부 차원에서도 찬반의 논쟁이 엎치락뒤치락하며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테면, 텍사스 주 휴스턴의 '휴스턴 평등권 조례(HERO)'의 경우를 보면 시장이 발의하고 시의회에서 가결되었지만 반대하는 주민들의 탄원에 의해 찬반 주민투표의 결과 폐기된 일이 있었다. HERO 조례의 주된 논쟁점은 '트랜스젠더에게 자신의 젠더 정체성에 따라 화장실을 사용하게 할 것'이었는데, "여자 화장실에 남자라니!"란 구호를 앞세운 반대 입장의 캠페인이 가결된 법을 폐기시키는 쪽으로 결과가 뒤집히게 된 것이다. 또한 노스캐롤라이나 주 샬럿 시의회에서는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례'를 통과시켰지만 정작 노스캐롤라이나 주 하원에서는 '공공시설 내 사생활 보호에 관한 법률'(House Bill 2, HB2)을 통과시키면서 생물학적 성별에 따라 화장실과 탈의실을 사용하도록 규정하였다. 이 일로 인해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이용권을 제약하는 내용이 전국적 논쟁 이슈로 재차 부각되었고, 유명한 기업과 공연자들이 찬반 대립 의견을 개진하며 해당 지역에서의 공연이나 투자를 보이콧하는 일도 있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 정부와 연방 정부는 결국 HB2법에 대한 법정 소송을 하게 되었으며 현재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외에 유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은 캘리포니아 주, 일리노이 주, 워싱턴 주, 펜실베니아 주, 사우스다코타 주, 앨라배마 주, 애리조나 주, 조지아 주, 루이지애나 주, 메인 주, 오클라호마 주, 테네시 주, 유타 주, 웨스트버지니아 주, 위스콘신 주, 켄터키 주, 미시시피 주, 뉴욕 시 등 말 그대로 미국 전역이라 할 수 있다. (* 글 뒤에 첨부한 <표 1> 참조)


그런데 이 구도가 깔끔하게 찬성 vs. 반대로 두부 자르듯이 나뉘어 있는 것일까? 맥락을 더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먼저 반대하는 입장(즉, 트랜스젠더라도 생득적 성별에 따라 화장실을 써야 한다는 입장) 쪽은 주로 보수적/근본주의적 종교 세력에 주요 기반을 두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트랜스) 여성의 성폭력 이슈를 동시에 제기하고 있다. 즉, 반대의 표면적이고 즉자적인 논거는 "성별이 뒤섞이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러다가 내 자녀(특히 딸, 손녀)와 아내와 어머니가 남자들과 화장실을 같이 써야 하고, 페니스가 달린 사람이 탈의실에 들어와도 '난 여자야'라는 말 한 마디면 용인해야 하는 거냐?"는 반박 논리를 내세운다. 그럼으로써 HERO 조례 찬반투표 때 대대적으로 TV 광고된 바 있듯이, 보수적 여성주의적 입장에서의 반성폭력 담론과 '트랜스젠더 화장실 사용 허용 불가'는 접목되어 서로를 강력하게 추동하고 있는 구도를 만든다.


그런데 찬성하는 입장을 들여다보면, 이 역시 복잡한 상황이라 하겠다. 이를테면,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위해서는 자신의 젠더 정체성에 따라 화장실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하는가? 대안으로 떠오르곤 하는 성-중립 화장실은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트랜스남성/여성이 아니며 성별이분법에 포함되지 않는 다양한 젠더 정체성들은 어떻게 하나? 트랜스섹슈얼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현재의 논쟁이 자칫 성별이분법을 강화하고 트랜스젠더의 젠더표현(gender expression)만을 과도하게 강화하는 부작용이 있지 않을까?" 등등의 의제에 대해서, 커뮤니티/지역/정치적 입장/정체성 등에 따라 매우 복잡하고 중첩되어 충돌 중이다. 즉, 찬성 측 입장(성소수자 인권을 존중하고 더 우선시하는 입장)은 반대 측 입장에 반대한다는 점에 대해선 나름 명확한 포지션을 만들었지만, 어떻게 해야 더 나아질 수 있을까에 있어서는 지금껏 만나보지 못한 난제를 만난 셈이다.


- 정답은 모른다, 하지만 고민해야 한다. 왜냐면...

이처럼 젠더 정체성의 다양성에 얽힌 '트랜스젠더 화장실 이용 이슈'는 온갖 요소가 그물망처럼 겹겹이 둘러싸인 논쟁지점이라 하겠다. 이 이슈는 너무 복잡하기 짝이 없어서, 제도권 내의 인권 담론에서는 물론이고 성소수자 운동 진영 내에서도 (소수의 목소리를 제외하면) 그 동안 덮어왔던 지점이었으며, 미국 내의 현재 혼란한 상황은 이 건이 드디어(?) 요철처럼 튀어나오는 증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끝으로 이러한 물음을 던져보련다. 한국 사회에 미국의 화장실 전쟁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무슨 의미일까? 진흙탕 싸움 같지만 선진 미국의 논쟁이니 한국도 그 뒤를 잘 따라가야 한다는 걸까? 아니면 반면교사 삼아서 한국에서는 좀 더 깔끔한 법제화를 하는 방법을 찾자는 걸까? 안타깝게도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은 그려지지 않는다. 


여성혐오가 판치는 한국 사회에서 그 해결책으로 성별 구분의 강화를 내세우는 제도권은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사용권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거나 폐기시켜야 할 사항으로 간주할런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모든 여성은 안전하게 화장실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는 논의에서 트랜스 여성은 '당연히 제외되는' 결과가 올 수도 있다. 미국에서 근본주의적이고 보수적인 페미니스트 집단이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사용권에 대해 보수 기독교 세력과 연대하여 반대하는 것처럼.


어떤 트랜스젠더가 어느 화장실을 써야 하느냐를 두고 젠더표현의 위상만 강화될 여지도 많다. 그 결과 패싱이 되지 않거나 기존의 젠더 규범을 따르지 않는 이들은 더더욱 젠더 이분화의 포위망에 옥죄어드는 처지가 될지 모른다. 성중립 화장실이나 1인 화장실이 그나마 나은 대안으로 떠오르고는 있지만, 이 역시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다수 논-바이너리 정체성을 하위범주화하고 '정상적이지 않은' 집단으로 공식화한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고민할 거리를 던진다. 결국 성별 이분화된 공간으로만 구축된 사회에 또 다른 상상력을 기대하는 것은 묘연한 일이라는 말이다. 현재 미국의 경우만 보아도 남/여/성중립 세 가지 옵션을 가지고 법제화를 시도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많은 트랜스 커뮤니티에서는 오히려 성별 이분화된 젠더 규범과 젠더표현을 공인하는 퇴행을 불러오지는 않을지 우려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비관적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방법이 정답인지 애매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트랜스젠더가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해야만 한다. 집 밖에 나왔다고 해서 "내가 과연 화장실을 쓸 수나 있을까?"를 걱정해야 한다는 환경은 그 자체로 트랜스혐오의 현현이기 때문이다. 

_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