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화장실 이슈의 끝은 마침표가 아니다.

신체의 노출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화장실은 정말로 재미있는 곳이다. 가장 개인의 sex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과정이 있으면서도, 일부러 보고자 행동하지 않으면 타인의 신체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 없이 많은 성별이분법적인 공간 속에서 화장실이 대표격으로 떠오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엄격한 성별이분법적 규제가 존재하지만 동시에 외양만 어떻게든 할 수 있다면 자신이 사용하고자 하는 화장실을 사용한다고 해서 규제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트랜스젠더들은 암암리에 자신의 진정한 성별과 동일한, 혹은 그에 가까운 성별의 화장실을 사용했고 지금의 논의는 지금까지의 암묵적 관행이 새삼스럽게 주목 받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이분법적 공간은 어떨까? 화장실 이슈와 함께 다루고 있는 탈의실 같은 공간부터, 개인정보를 공개할 수밖에 없는 공간까지, 100% 시스젠더(*지정성별과 자신이 인지하는 성별이 일치하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가 아닌 사람들이 겪는 성별에 의한 고통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그렇기에 다양한 성별이분법적 규제가 있는 장소에서 일어나는 역동이 어떤 형태인지, 그리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생각하고자 한다.

개인이 자신의 정신이 지정성별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내재화하여 본연의 성에 맞는 젠더를 표출하면 사회는 젠더와 주민등록상의 성별의 불일치를 끝없이 지적하고 규제한다. 그러나 그 규제는 생각보다 허술한 것이다. 외형, 행동, 목소리… 아무도 규제의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명문화 되어 있는 기준을 객관적이라 여기고 의지한다. 이는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이슈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이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미국을 기준으로 보수적인 정책을 취하는 주정부의 경우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을 용인한 상태에서 개인이 그 시점의 법적 성별에 따라 화장실을 가야 한다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이 제시되는 이유는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 사회가 인정하는 성별에는 동의, 혹은 용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은 권위와 명확성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법은 한 국가 안에서 개인의 성별에 대한 개념을 조정할 힘을 가진다. (*성별정정의 의료적 조건은 국가마다 다르므로 한 국가의 조건이 다른 국가에서 무조건 통용된다고 할 수는 없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의료적인 진단 없이 성별정정이 가능하며 대한민국의 '성전환자 성별변경 등에 대한 사무지침'의 경우 ‘자신의 진정한 성의 성기와 흡사한 외관’을 구비할 것을 요구한다.) 특히 화장실 이슈는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 조금 더 타인의 육체적 성별에 민감할 수 있는 공간, 예를 들면 개인의 성을 노출시키는 탈의실, 목욕탕, 헬스장과 같은 공간에 대한 가치관과도 관련이 깊다. 그렇기에 화장실 이슈가 성호공적으로 각 구성원 모두가 인정하고 적절히 양보하는 정책을 통해 안정된다면 단순히 법적 보장을 넘어 윤리나 관습으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화장실 이슈는 그 자체로 어떤 식으로든 많은 변화를 만들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화장실 이슈에 대한 정책 및 법이 트랜스젠더의 공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은 아니다. 트랜스젠더의 불편은 결코 특정한 공간, 신체의 노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면접장, 징병검사장, 학교 등에서 겪는 도저히 피할 방법이 없는 고통부터 작게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무리 주장해도 믿거나 인정하지 않는 주민센터, 은행직원과 같은 피곤한 오해까지, 인간이 한시도 공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듯, 트랜스젠더의 불편 또한 도처에 존재한다. 화장실 이슈는 트랜스젠더의 공간에 대한 마스터키가 아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와 트랜스젠더 규범이 가까운 곳에 있음을 자각하고 수많은 충돌과 발전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불길을 만들 자그마한 불씨가 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는 트랜스여성이고, 최근 독립을 위해 원룸을 알아보고 있다. 말 그대로 좀 속 편하게 살만한 공간이 갖고 싶어서 하게 된 일이다. 그런데 월세계약서의 양식은 여전히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요구한다. 불편한 마음으로 뒷자리를 적고 나면 건물주는 나의 외모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심하면 계약하는 것을 꺼릴지도 모른다. 계약을 무사히 해서 나의 집에 살게 되더라도, 끊임없이 눈치보게 될지도 모른다. 트랜지션을 할수록,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갈수록. 집주인이 알고 있는 주민등록상 성별과 나의 성별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어느 사람은, 집계약을 한지 2년 후에 만난 집주인이 왜 다른 사람이 사냐고 추궁했고, 계약한 사람의 여동생이라고 설득하여 위기를 모면한 적도 있다. 한숨과 함께 익숙하게 주민등록번호를 서류에 적어나가고, 계약 안하겠다고 하면 나도 다른 집 찾아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이런 위안으론 마음 속 씁쓸함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까지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하는지 고민한다. 그렇기에 생각한다. 이런 일을 더 겪지 않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런 노력 끝에 손에 넣을 수 있는 공간은 어떤 것이 있을까?

_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