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수도 없이 커밍아웃


제 커밍아웃 스토리의 전부를 이야기 해드리려면 너무나도 길어서, 그 일부만 이야기 해드릴게요.


저한텐 커밍아웃이라는 과정은 길고 추상적인 여행과 같아요. 모두에게 제 정체성을 밝힌 지 오래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커밍아웃을 하며 살게 되네요.


가족한테는 2년 전에 커밍아웃을 했어요. 저 혼자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였어요. 부모님과 동생에게 떨면서 메일을 하나씩 보냈던 기억이 나요. 그 때 그랬죠. 성별을 이분화하는 세상이 밉다고, 성별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고. 근데 이 꿈은 현실과는 너무 먼 상상이라고. 그래서 하나의 성별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여성 정체성을 택하겠다고. 


참 무서웠어요. 동생은 그나마 미국에서 줄곧 공부했고, 사고방식이 개방적인 편이어서 이해할 것이라 믿었어요. 그런 반면 부모님의 반응이 많이 두려웠어요. 두 분 다 기독교시고 보수적인 면이 어지간히 강하신 분들이니까요.


동생으로부터 답장을 먼저 받았어요. 동생의 메일엔 다 이해한다는 말과 항상 응원하고 지지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말들로 가득했죠. 그리고 몇 일 후, 아버지께 연락이 왔는데, 너무 놀랍게도 다 괜찮다고 심지어 ‘도와줄 수 있는 만큼 도와주겠다. 그리고 네 엄마와도 얘기 했다’라고 하셨죠. 정말 예상 밖의 반응이었어요. 그 때 눈엔 눈물이 고이고 마음은 평온해졌어요. 정말 감동했어요.


근데, 그 후론 부모님도 동생도 이에 대해서 얘기를 거의 피한다고 느꼈어요. 오히려 저한테도 아직 어색한 주제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전화통화할 때 아직 제 남자이름과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선 별 말 안 했죠.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구나’하고 생각했죠. 새로운 이름도 아직 안 지었고요. 솔직히 저도 모르게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던 것 같고, 잘못된 호칭을 사용할 때마다 지적하는 제 모습이 싫어지더라고요. 마치 대화할 때 항상 제가 요구만 하는 것 같았어요.


말로 ‘이해한다’, ‘응원한다’라고 하는 건 쉬운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트랜지션해가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게 되면 그 ‘이해’와 ‘응원’은 항상 유지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트랜지션은 당사자에게도 어려운 과정일 수 있지만 그 주변 사람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기 힘든 과정인 것 같아요.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오자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죠. 부모님이랑 동생 앞에서 과거와 비해 더 여성적이라 생각되는 차림을 하고 다닐 때 되게 싫어하더라고요. ‘화장은 왜 하니?’,’꼭 그런 옷 입어야 하니?’, ‘사람들이 뭐라 하겠어?’ 이런 가슴 아픈 질문이 끝도 없이 지속되었어요. 가족은 저랑 같이 외출하는 것을 많이 불편해 했어요. 백화점같이 사람 많은 곳에서는 항상 저에게서 두 발짝 떨어져 걷더라고요. 심지어 이젠 아들이 아니라고, 이젠 아들이라 부르지 말라고 하면 거의 비웃듯이 넘어가는 거예요. ‘그래, 그래 알았어. 이해해줄게’. 마치 제가 커밍아웃을 안 한 것 같이 느껴졌어요.


다시 커밍아웃을 했죠. 그 후로도 또 했고요. 다시 또 하고요. 그제서야 가족이 조금씩 적응하고 진지하게 인정해주기 시작한 것 같았어요. 하도 고집하니깐 제가 진심이라는 것을 받아들인 것 같아요. 대부분에 친구들과도 마찬가지였어요. 한번 말해 갖고는 이해시키기 어렵더라고요. 특히 트랜지션 초기 때는 외형적으로는 반대 성별의 모습을 아직 지니고 있잖아요.


이젠 사람들이 이해해주는 것, 인정해주는 것은 원하지도 않아요, 다만 존중해줬으면 좋겠어요. 저에겐 제 정체성은 제가 확고한 진실이에요. 남이 뭐라 한들 이젠 흔들리지 않아요. 내가 내 자신 일 수 있어 너무나 행복한걸요. 그래서 믿습니다, 어색하고 어려울지라도 당당하게 계속 커밍아웃을 해서 자기만의 정체성을 존중 받아야 되요. 우린 분명 그럴 권리가 있어요.

_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