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소개[칼럼] 세상을 바꿔온 생존자의 말하기를 지지합니다.

2020-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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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꿔온 생존자의 말하기를 지지합니다>
#박원순_시장을_고발한_피해자와_연대합니다
 


7월 8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되었습니다. 전형적인 권력과 위계에 의한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이었습니다. 피해자는 4년여에 걸쳐 이어진 성폭력에 대해 고발하고자 용기를 내어 나섰지만, 응당 본인의 행동에 대해 답을 하고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이는 다음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건이 뉴스에 보도된 날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페미니스트와 성폭력 생존자 동료들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 주변의 많은 이들이 호소했던 감정은 무력감 그리고 좌절감이었습니다. 성폭력 가해자라 하더라도, 누군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다면 많은 이들이 비통함을 느낍니다. 피해자도 예외는 아니며, 가해자와 평소 친밀한 관계였다면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저와 제 주변인들이 느꼈던 감정은 무력감이었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받은 이가 세상을 떠난다면, 생존자가 어렵게 말한 피해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쉽사리 묵살되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는 결코 법적, 공적인 영역에서의 말하기가 되지 못하고, 피해에 대해 말해본들 “고인이 된 이에 대해 나쁜 말을 하지 말라”라는 등의 말과 함께 따라오는 2차 가해에 부딪혀 공허하게 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 중 누군가는 사건이 가져다주는 무력감과 좌절감에 휩싸였고, 누군가는 자신이 겪었던 유사한 피해를, 비슷한 가해자에 대한 기억을 되새겼습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에게 쏟아지는 2차 가해들을 보며 함께 고통을 느꼈습니다.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의 죽음이 가지는 의미는 이렇습니다. 
가해자의 죽음 앞에서 피해 고발은 사회적, 법적으로 존재치 않았던 사건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남은 피해자는 사건이 남긴 2차 가해와 계속해서 싸워야 합니다.

전 서울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추행 사건에 대한 형사 고소는 피고소인이 고인이 되었기에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위력에 의한 가해는 피해자가 이 사건을 고발하면서부터도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 피해자가 고소를 진행한 지 하루도 안 되어 그 사실이 피고소인에게 보고되었습니다. 
- 일터 내에서 일어난 성폭력이며,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이 큰 사건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진상조사가 시급한 사안입니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어떠한 조사도 진행하고 있지 않았으며, 오히려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전 서울시장의 장례를 진행했습니다. 
- 피해자의 신상을 캐고 사건의 모든 것을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등 2차 가해가 연이어 지속되고 있습니다. 
- 심지어 장례위원회 측은 피해자 지원단체가 기자회견을 진행하자 자신들과 연결되는 모든 기자들을 통하여 기자회견에 참여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연락을 돌렸습니다. 

이 얼마나 숨 막히는 위력인가요. 성폭력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그 권위와 위력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사건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습니다. 
가해자는 성폭력 사건에 있어 피해자의 말하기에 책임을 지고 답해야 할 주체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성폭력 문화 또한 사건을 방조하고 있습니다. 현 상황에서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사건의 해결과 재발방지를 위해 나서야 할 주체는 서울시입니다. 공소권 없음으로 경찰 수사가 종결된 상황에서, 서울시는 한 기관의 기관장으로서 고인의 장례를 진행했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와 관련된 모든 것은 그렇게 그 사람의 공적(功績)만이 이야기되고 있으며, 피해자가 고발한 사건은 공적 영역에 있서 ‘중요하지 않은 일’처럼 취급되었습니다. 사건에 대한 그 어떤 해결책도 고민하지 않는 서울시가 진행하는 서울특별시장(葬)은 그래서 너무나도 부적절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서울시의 책임있는 후속 조치를 촉구합니다. 피해자가 처음 피해를 호소했을 때 그것이 어떻게 묵살되었는지, 어떻게 4년여 간 피해가 고발되지 못했던 것인지 서울시 내부의 성폭력 문화를 낱낱이 점검해야 합니다.



이제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세상을 바꾸어나가야 할 때입니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모든 문제제기는 피해자의 고발로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생존자의 말하기는 세상을 바꿉니다. 한 때 성폭력은 ‘없던 일’이고 ‘숨겨야 할 일’ 이었습니다. 분명히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 그동안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싸워 왔던 핵심 중 하나입니다. 생존자의 말하기 없이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말하기는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성폭력 문화에 대한 저항이자 더 이상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지금 가장 귀를 기울이고 무한한 지지를 보내야 할 것은 생존자의 말하기입니다.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라고 피해자는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습니다. 이제 우리는 위계와 위력의 존재를, 성폭력이 존재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가능케 했던 데에는 성폭력 문화가 함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의롭게 해결될 수 있도록 생존자의 말하기를 이어나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또 이로 인해 지속되고 있는 2차 가해에 고된 압박감을 느꼈을 성폭력 피해생존자와 그 주변인들에게 위로를 보냅니다. 지금도 살아나가고 있는 모든 이들을 지지합니다.

2차 가해에 맞서, 그리고 사건 해결을 위해 싸우고 있는 모든 페미니스트와 연대합니다. 우리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분노하고 연대하며 서로의 힘이 되어 이 사회의 성폭력 문화와 싸워나갈 것입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을 이번 사건의 피해자에게 무한한 지지를 보냅니다. 당신이 보여준 용기로 드러날 수 있었던 이 사건이 정의롭게 해결되도록, 그래서 당신이 우리 모두가 마땅히 누려야 할 일상적인 평화를, 존엄한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_조각보 활동가 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