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개인후기투표할 권리를 찾아라! : 1과 2가 빼앗은 권리 투표장에서 찾기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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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투표일. 출근하기 전 투표를 할 요량으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예전처럼 가장 '남성스러운' 옷을 고르고 제법 후덥지근한 날씨에 모자 달린 바람막이를 쓰고 문을 열었습니다. 무난하게 입어야 얼른 투표를 하고 올테니까요. 그러다 문뜩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투표하겠다는 데 왜 이러고 다녀야 하나?'

그리고 저는 문을 다시 닫았습니다. 그리고 평소에는 불편해서 쳐다도 안 보던 치마를 입고 제 의지로는 거의 하는 일 없는 메이크업까지 했죠. 1이 붙은 주민등록증을 들고 가벼운 긴장감과 함께 다시 밖으로 나갔습니다.

일종의 반항심에 한 소소한 저항이지만 사실 그렇게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전투표소에는 지문인식기도 있고 주민등록증에 붙어있는 사진도 찍은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네요. 역시나 쑥덕거립니다.

"여기(노트북)에는 1이라고 나오는데?" "여기 민증도 1이니까."

행여나 주변에 있는 사람이 못 들을까 하고 큰 소리로 이야기 하던 선거요원들은 제가 자신들을 부끄러움과 분노와 체념을 담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았는지 잠시 뜸을 들인 후 투표용지를 뽑아주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긴 시간이 든 투표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씁쓸했지요. 지문인식기까지 동원되는 사전투표에서 이런 일을 겪을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요. 만약 본투표였다면 저는 어떤 일을 겪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저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들은 어떤 일을 겪게 될까요?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그리고 외모와 성별 고정관념이 일치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일은 일상과도 같습니다. 적당히 사회와 타협하거나 부딪쳐가며 살아가는 것은 씁쓸하지만 실존하는 현실이죠. 그러나 다른 일도 아닌 투표입니다. 타협을 해야 안전하게 투표할 수 있고 타협하지 않으면 아웃팅을 당하거나 심하면 투표를 하지도 못할 수 있는, 그렇기에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 괜찮은 대안으로 다가오는 현실이 가슴 아프고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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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있을 본선거에서 온전히 나 자신으로서 투표를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굳이 불편을 겪어가며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거권을 행사했다는 모두가 누려야 할 당연함을 함께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_조각보 활동가 희정